2023년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연구 중 하나는 가상 주민 25명이 스스로 어울려 사는 '스몰빌' 프로젝트였다. 이 연구를 이끈 박준성 박사의 스타트업 '시밀리'가 최근 2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시밀리는 거대언어모델(LLM)이 잘 따라 하지 못하던 인간 행동의 비합리성과 고유한 선호를 예측하는 행동 파운데이션 모델을 내세워, 디지털 트윈 시뮬레이션을 실제 사업으로 만들고 있다.

스몰빌 연구에서 20억 달러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시밀리

2023년 학계와 산업계의 관심을 모은 가상 마을 '스몰빌' 연구진이 이제 실제 비즈니스 시장으로 나왔다. 당시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에 있던 박준성 박사는 AI 에이전트 25명이 스스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며 사는 가상 마을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는 AI 에이전트가 저마다의 성격을 바탕으로 일상을 꾸리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고, 이후 에이전트 기반 시뮬레이션 연구가 쏟아지는 계기가 됐다.

박준성 박사는 이 가능성을 사업으로 옮기기 위해 스탠퍼드 연구진, 지도교수진과 함께 인간 행동 시뮬레이션 기업 시밀리를 세웠다. 시밀리는 가상 환경 실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 인간의 행동 패턴을 시뮬레이션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 개발에 집중해 왔고, 그 기술력과 비전으로 투자 시장에서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최근 그린오크스가 주도한 시리즈 B 라운드에서 시밀리는 2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2억 달러를 새로 투자받았다. 앞서 받은 1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 A까지 합치면 누적 투자금은 3억 달러다. 안드레이 카파시와 페이페이 리 같은 AI 석학들이 초기 투자자로 참여해, 기술적으로 검증을 받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가상 마을 스몰빌 논문의 1저자 박준성 박사가 창업한 시밀리가 20억 달러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프런티어 모델 한계 넘는 행동 파운데이션 모델

거대언어모델(LLM)은 추론 능력이 크게 좋아졌지만, 사람의 복잡하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OpenAI의 GPT-4를 비롯한 기존 프런티어 모델은 일반 대중의 의사결정을 모사할 때 정확도가 50%에서 60% 수준이다. 사람이 쓴 텍스트를 폭넓게 학습했어도, 특정 상황에서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한계는 기업이 마케팅이나 제품 기획에서 실제로 겨냥하는 좁은 인구 집단을 분석할 때 더 두드러진다. 대상 집단이 좁고 구체적일수록 기존 프런티어 모델의 모사 정확도는 20%에서 30% 수준까지 떨어진다. 통계적 다수가 아닌 소수 집단의 취향, 지역적 특성, 사회적 맥락을 흉내 낼 방법이 없어서다.

시밀리는 이성적 추론 대신 인과 데이터에 기반한 '행동 파운데이션 모델'을 내놓았다. 이 모델은 사람이 의사결정을 할 때 드러나는 비합리성과 고유한 선호를 재현해 인간 행동 모사 정확도를 85%까지 끌어올렸다. 기존 상용 프런티어 모델보다 배 이상 높은 수치로, 비즈니스에 바로 쓸 수 있는 디지털 트윈의 바탕이 된다.

시밀리의 디지털 트윈 모델은 틈새 인구 집단에서 모사 정확도가 급락하는 기존 GPT-4와 달리 85% 정확도로 인간 결정을 복제한다.

25명 실험에서 80억 인구 시뮬레이션 비전으로의 확장

시밀리의 에이전트 시뮬레이션은 규모를 키워 가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출발점인 2023년 스몰빌 프로젝트에서는 저마다 성격을 부여받은 에이전트 25명이 가상 마을에서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했다. 이들은 스스로 약속을 잡고 파티를 계획하는 등 현실적인 의사결정 패턴을 보여 줬고, 사회 시뮬레이션의 기본 틀이 여기서 잡혔다.

이후 연구팀은 개인의 성격 유형과 심리적 특성을 흉내 내도록 개선한 1,000명 규모의 생성형 에이전트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에이전트가 수십 명에서 천 명 단위로 늘자, 집단 안의 다양한 상호작용이나 하위 문화 형성처럼 실제 사회에 더 가까운 현상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연구 실험에 그치지 않고 시장 분석과 거시적인 인구 행동 파악에 실제로 쓰이기 시작했다.

시밀리가 지금 추진하는 목표는 지구상의 80억 인구 전체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전 세계 여러 지역의 인종, 문화권, 연령대별 행동 패턴과 선택 방식을 가상 모델로 복제해 돌아가는 시뮬레이션 체계를 만들려 한다. 가상 인물 25명의 일상에서 시작한 에이전트 기술이 인류 전체의 집단적 결정을 예측하는 틀로 커지고 있다.

스몰빌 가상 마을 25명 실험에서 출발한 에이전트 연구는 1000명 모방을 거쳐 전 세계 인구 시뮬레이션 목표로 확장되었다.

글로벌 기업들의 디지털 트윈 시뮬레이션 도입

시밀리의 행동 파운데이션 모델은 기업의 신제품 출시 과정과 시장조사 방식을 바꾸고 있다. 헬스케어 유통 대기업 CVS 헬스와 컨설팅 그룹 딜로이트는 새 상품군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미리 예측하고 매장 진열 방식을 검증하려고 시밀리의 디지털 트윈 기술을 들여왔다. 실제 매장에서 파일럿 테스트를 하지 않아도 시뮬레이션으로 레이아웃과 가격 저항선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자산 관리 플랫폼 웰스프론트와 여론 조사 기관 갤럽도 디지털 에이전트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오프라인 마케팅 패널 조사를 시뮬레이션으로 바꾸고, 실적 발표 같은 대외 행사를 앞두고는 가상의 청중 에이전트에게 예상 질문과 반응을 받아 전략을 다듬는다. 사람의 선호를 여러 각도에서 시험해 돌발 변수를 줄이는 도구로 자리를 잡았다.

시장조사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믿을 만한 수천 명 규모의 설문이나 행동 데이터를 모으려면 몇 달과 수천만 원의 예산이 들었다. 에이전트 기술을 쓰면 대량의 가상 패널 반응을 훨씬 짧은 시간에 뽑아낼 수 있어, 비즈니스 의사결정이 그만큼 빨라진다.

CVS 헬스, 딜로이트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신제품 반응 예측과 분석 업무에 시밀리의 시뮬레이션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추론을 넘어 실제 인간 행동을 복제하는 엔지니어링 패러다임

에이전트 기술의 발전은 사람과 소통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개발자들에게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시밀리의 박준성 대표는 그간의 대형 프런티어 모델이 수학 문제 풀이나 합리적인 추론 성능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면, 다음 단계의 AI 엔지니어링은 사람의 비이성적인 성향과 불완전한 선호,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성을 얼마나 정밀하게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사람을 완전히 합리적인 주체로 보지 말고, 현실의 비합리적인 결정을 복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업 개발자라면 명령 위주의 프롬프팅이나 고정된 룰 베이스 설계에만 기대지 말고, 인과 관계가 담긴 양질의 데이터로 특정 도메인의 행동 파운데이션 모델을 훈련하고 검증하는 과정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실제 소비자와 관련 집단의 삶의 궤적과 성향을 디지털 세계로 옮기는 다중 에이전트 시뮬레이션은 제품 테스트부터 리스크 평가까지 개발 라이프사이클 전반을 바꾼다.

다중 에이전트 시뮬레이션은 단일 모델의 응답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거대한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가상으로 돌려 미래의 행동을 여러 각도로 시험하는 방식이다. 이성적인 지능을 높이는 것과 함께, 우리 제품을 쓰는 실제 사람들의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을 가상 공간에서 얼마든지 모사하고 실험해 보는 엔지니어링이 필요해졌다.


참고